4월의 화성행궁은 초록색
2년 전에 화성행궁 다녀온 뒤 날씨가 좋아 충동적으로 다녀온 화성행궁.
그 당시에는 스탬프투어에 해당하는 장소만 다녀왔고 이번에는 그 때 다녀오지 못한 곳 위주로 돌아다녀보았다.
입장료는 성인 2천원.
가기 전에 행궁동에 들려 빵과 레몬에이드를 샀는데 음식이랑 음료가 반입금지일까봐
창구에다 반입 가능한지 물어봤다. 만약 안되면 매표소 앞 나무 아래 앉아서 먹어치울 생각이었는데
쓰레기 무단 투기만 안하면 반입이 가능하다.
아주 너그러운 처사에 빵과 음료 챙겨서 출발했다.
미로한정
화성행궁 뒷편으로 가다보면 낮은 산길이 나있다. 그쪽으로 가다보면 화성행궁이 내려다보이는 정자 하나와 초소 하나를 볼 수 있는데 정자는 미로한정이라 부르고 초소는 내포사라고 부른다. 정자 바로 뒷편으로 담장이 둘러져있고 외부와 통행할 수 있는 문이 하나 달려있다. 종종 행궁 바깥쪽 등산로 행인이 문을 열고 들어올라하길래 통행해도 되는건가 싶었는데 아마도 안되지 않을까..
날씨가 좋아 정자에서 머물다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로한이라는 이름을 붙인 시구처럼 늙기 전에 한가로움을 얻었으니 다들 진정한 한가로움을 즐기고 갔기를 바란다.
낙남헌
공식 행사나 연회 시 사용했던 공간이라는데 일제강점기 때에는 군청이랑 교무실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짜증나긴한데 교무실로 사용했을때 어떻게 활용했을지 궁금해진다. 지금 건물은 외부에만 창이 달리고 안쪽으로는 하나로 트인 공간인데 여기서 교무실..? 문을 따로 달아서 공간을 구분했을까 아님 책상 사이에 파티션을 두고 사용했을까?
낙남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한나라 유방이 부하들에게 건국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낙양이라는 지역의 남궁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는 이야기에서 왔다고 한다. 건물의 사용목적에 맞는 근사한 이름을 짓는게 쉬운일은 아닌데 행궁 건물마다 지어진 이름들을 보면 정조가 보통 똑똑한 사람이 아니란게 새삼 다시 느껴진다.
취병와 연못
장춘각 복원하면서 만들었다는 취병과 연못이다. 제작년에 복원된 곳이라 그런가 행궁의 고즈넉함 속에 새건물 느낌이 바로 들었다. 우리나라 전통 조경방식인 취병은 침엽수 가지를 지지대에 엮어 병풍처럼 구역을 나누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보면서 약간 의아했던건 취병 안에 아무것도 없고 구역을 나눌만한곳도 아니라고 느껴졌는데 울타리만 덜렁 있다는것이었다. 화성행궁을 그린 옛 서화들을 보고 복원했다고 하는데 저 곳에 굳이 취병을 세워서 구역을 나누었을까.. 화장실같은 곳으로 쓴건가 싶기도 하다. 아직 잔가지들이 많이 올라오지도 않아서 출입문이 없으면 옛날 놀이터에서 보던 정글짐같이 보이기도 한다.
연못도 예쁘게 잘해두었는데 역시 물이 고이면 이끼가 끼고 벌레가 끓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가까이 갔다가 날파리떼 보고 기겁해서 뒷걸음질쳤다.
우화관
23년도에 복원된 곳 중 하나. 지방 수령이 매달 국왕에 대한 의례를 행하는 곳이자 관리나 사신이 머물던 곳이라고 한다.내부는 복원 과정에 대한 전시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여기도 단청이나 헌판이 다른 건물에 비해 아주 깨끗한게 새 건물 느낌이 물씬 난다.
화령전
정조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 지금도 지내는지 모르겠지만 조선왕조가 이어지던 그 때 까지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 그런건지 화령전 내 건물들은 다 단청이 없이 나무가 그대로 드러나있다. 수수한 매력도 있는데 세월의 흔적이 더 적나라하게 보이는 느낌이 든다. 신기한건 건물에 단청은 안하는데 헌판은 예쁘게 꾸며놓았다는거... 화려한 헌판이 수수한 건물에 걸려있으니 조금 이질감이 들었다.
풍화당
제사를 준비하는 곳이자 경로당이라고 한다. 왕이 직접 내려와 제사를 지낼적이면 왕이 묵는 숙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내가 당시 제사 지내던 어린 사람이면 여기 근처는 진짜 오기 싫었을 것 같다. 괜히 가봤자 마주치는게 왕 아님 집안 어르신이면... 좋은 소리 들어도 다른 꿍꿍이가 있나 싶을거 같고 싫은 소리 들으면 진짜 죽기보다 싫을거 같은 느낌.
운한각
정조대왕의 어진이 있는 곳이다. 물론 원본은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없어졋다고 한다. 지금 놓여있는 어진은 어떤 근거를 가지고 그렸을지 궁금해졌다. 빨간색 곤룡포가 아니라 내 선입견 속 어진과 다른 느낌이 들어 왕이 아닌 장군을 그린 것 같이 느껴진다. 건물 내부는 세기를 거치면서 조금 근대화 된 느낌이었다.
이안청과 복도각
운한각에 수리할 일이 생기거나 변고가 생길 시 어진을 임시로 보관하는 곳이라고 한다. 이 사이를 연결하는 복도가 특이한 점이라고들 하는데 기와의 끝이 겹치면서 생기는 구도가 마음에 들었다. 비 오는 날 가면 색다른 느낌이지 않을까.
새로운 곳은 얼추 다 둘러보고 집가는 길에 본 야간개장 준비장면. 낙남헌 앞 공터에 보름달 구조물을 놓는 모양이다. 지난 해 야간개장 보러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는데 올 해는 사람 없는 틈을 타서 야간개장한 화성행궁도 돌아보고 싶다.